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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의 신학’ 혹은 ‘번영이라는 신학’ 15.07.0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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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의 신학’ 혹은 ‘번영이라는 신학’




“사회의 일부에서, 공동체 생활과는 전혀 무관한 다양한 형태의 ‘웰빙의 영성(정신)spirituality of well-being'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혹은 우리 형제자매에 대한 책임을 도외시하는 ‘번영의 신학 (번영이라는 신학)a theology of prosperity'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복음의 기쁨〉, 90항)


  우선 ‘신학’이라는 용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겠습니다. 〈복음의 기쁨〉에서 ‘신학 theology' 혹은 ’신학적 theological'이란 말은 하느님께 대한 인간과 교회의 모든 정신, 태도, 행동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학문’으로서의 ‘신학’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인간과 세상과 교회를 향해 펼치신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할 때에는 어떤 표현을 쓸까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거룩한 divine'이란 표현을 씁니다. ‘거룩한 은총’, ‘계시의 거룩한 원천’ 따위가 그렇습니다. 부수적으로 영어의 ‘of’에 대한 번역도 검토해보겠습니다. 여러 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동격의 of'입니다. 교황권고 전체의 의도를 고려하면 '번영이라는 신학'으로 번역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번영의 신학’ 혹은 ‘번영이라는 신학’이란 용어는 ‘번영’이 곧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응답이라는 뜻이며, 하느님을 내세워 인간의 ‘번영’을 추구하는 모든 정신, 태도, 행동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번영’이 그 자체로 피해야 할 것은 아니겠지요. ‘번영’에 이르는 과정이나 성격이 문제입니다. 앞의 인용에서 밝힌 것처럼, “공동체 생활과 전혀 무관한”, “이웃에 대한 책임을 도외시하는” 태도와 삶이 문제입니다. 이를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기적 개인주의’라 하며, 그 폐해는 다음과 같이 불신앙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자신만의 이익과 관심에 몰두할 때, 우리 마음에는 다른 이들을 위한 자리,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자리가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더 이상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하느님 사랑인 고요한 기쁨 the quiet joy of his love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이기적 개인주의는 더 이상 선한 일을 하려는 열망도 갖지 못하게 합니다.” (2항)


   지난 수십 년 우리 사회는 ‘번영’을 노래하였습니다. 지도자들은 ‘번영’이 우리를 약속된 땅 the promised land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세뇌했고, 우리는 최면에 걸려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약속의 땅을 향해 가고 있습니까? ‘이기적 개인주의’의 덫에 걸려 고통스럽게 몸부림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이 사회에서 교회마저도 ‘번영의 신학’에 취했던 것은 아닌가요? 프란치스코 교종이 지난해 이 땅을 찾아 주교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을 다시 새깁니다.
“악마가 가라지를 심지 못하도록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바로 교회의 예언자적 구조에서 사회적 약자를 제거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마십시오.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 잘 사는 well-to-do 이들의 교회, 그런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번영의 신학’에 이르렀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저 그런 교회가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복음의 기쁨〉에서 ‘번영의 신학’과 분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영광 the glory of christ's cross’(5항)의 길입니다. 교종은 곳곳에서 이를 호소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얻는 것은 언제나 십자가입니다. 그렇지만 그 십자가는 언제나 승리의 깃발입니다.”(85항) 이는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 그들의 목소리에서, 그들의 탄식에서 예수님을 발견하는”(91항)삶을, “다른 사람한테서 고통 받는 그리스도의 몸을 보고 그 몸을 쓰다듬음으로써 인간생명을 끌어안는”삶을 말합니다. 자기 몸에 “양의 냄새”(24항)를 바르고, “신발에 흙을 묻히고 거리로 나서는”(45항)것을 말합니다.


   “권력, 특권, 즐거움, 그리고 경제적 이익 추구”(98항), “재정적 풍요, 권력을 향한 욕망, 혹은 현세의 영광”(80항)곧 ‘번영’을 추구하는 신학은 “자기만족과 방종이라는 공허한 쾌락”(95항)에 불과합니다. 교종은 이를 격렬하게 고발합니다.
“선한 것으로 가장한 엄청난 타락”(96항)이라고, “끔찍한 참화”(93항)를 가져올 것이라고.

박동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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