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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그리고 마지막처럼 14.04.2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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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합니다!

  주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봄철이 되어 새롭게 움 돋는 새싹과 피어나는 꽃잎들도 주님 부활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시기이지만 한편으로는 세월호 침몰 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피해자들이 하루 빨리 주님 사랑과 위로를 통해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오늘은 삶의 태도에 대하여 나눌까합니다. 삶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수히 많습니다. 내세관(來世觀, 사후 세계에 대한 견해나 입장)도 그 중에 중요한 하나입니다. 사람들의 내세관을 분석해보면, 크게 순환적 내세관과 직선적 내세관이 있습니다. 동양종교들은 순환적 내세관에 가깝고, 서양종교는 직선적 내세관에 가깝습니다. 예로 불교에서는 윤회를 이야기 하지만, 그리스도교에서는 윤회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직선적 내세관을 가르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한 번의 탄생, 한 번의 죽음만 있습니다. 또한 단 한 번의 세례가 있고, 견진이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순간들은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 입니다. 또한 영원과 같은 과거와, 영원과 같은 미래가 만나는 위대한 순간입니다. 오늘 하루도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하루입니다. 그렇기에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늘 처음처럼, 늘 마지막 날처럼 여겨야 합니다. 신영복 교수의 시를 나누고 싶습니다.

신영복 <처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혹자는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전례력은 왜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지요? 실제로 우리 교회는 연중시기, 부활시기, 사순시기, 대림시기 등을 매년 반복합니다.

  교회는 전례력을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 신비를 ‘기념’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 기념이라는 말은 단순히 ‘기억’이라는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기념은 ‘현재화’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전례를 통해 하느님 신비를 기억하고 현재화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매일 드리는 미사도 과거의 사건을 현재화 합니다. 곧 예수님의 미사는 지금 다시 이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에 하나의 밀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습니다. 사실, 우리가 듣는 독서 말씀과 복음 말씀 또한 그 자리에서 현재화 됩니다. 늘 새로운 미사이며, 새로운 말씀입니다. 지난 주 우리가 기념했던 부활 또한 우리 안에서 현재화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바로 삼위일체 하느님 덕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시간이 없으신 분, 영원과 영원을 뛰어넘는 무한하신 분입니다. 그렇기에 늘 우리와 함께 해 주시고, 성경 안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또한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은 다시 주어지지 않을 삶입니다. 종말론적 삶이지요.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더 자신의 소명에 책임을 지고 살아야 합니다. 두려운 생각이 들지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늘 자비의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기다려 주시고, 힘을 주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의 기다림 때문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처음처럼 그리고 마지막처럼)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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