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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마태6.34) 14.02.28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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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보름동안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을 통하여 우리 국민들은 기쁨과 아쉬움을 함께 나누며 보냈습니다.

대회 초반 모태범선수의 첫 번째 금메달에 많은 기대를 안고 늦은 시간까지 잠을 미루며 한마음으로 응원했지만 스케이트 강국 네델란드의 높은 벽에 막혀 기대를 접어야 했습니다. 예상했던 종목의 메달 소식들이 늦어지며 초조해하고 있을 때 온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이상화선수가 금메달을 안겨주었고 우리는 아낌없는 박수와 기쁨의 환호를 함께 했습니다.

뒤이어 여자 쇼트트랙에서 두개의 금메달을 추가하며 다시 한 번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사로잡았고 피겨 스케이팅 김연아 선수의 경기가 있던 날. 온 국민이 실수하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지켜보며 응원하였지만 어처구니  없는 심판들의 채점으로 은메달에 머물었을 때 우리는 아니 온 세계의 눈은 아쉬움과 편파 판정에 억울해 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속상했을 당사자인 김연아 선수의 동요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예쁘고 대견스럽게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최고의 능력을 바탕으로 한 여유와 즐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온 국민에게 행복을 안겨준 대표선수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오랜 기간 동안 동계올림픽의 축제를 준비하며 함께 땀방울을 흘렸던 많은 선수들에게도 격려의 박수와 희망의 응원을 보냅니다.

  오늘 복음중에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한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6.24)라는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일상생활 안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선택이라는 행위에 대하여 바라보게 됩니다.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몸에 베어버린 습관들이 이제는 본연의 모습인양 주체를 잃어버리고 안과 밖이 너무도 상이한 삶을 살아가고 있진 않은지 성찰해봅니다.

교회 안에서만 하느님의 자녀인 나의 모습은 아닌지... 보여주는 겉모습에만 사랑이 있는건 아닌지... 가진 자에게는 아부하고 어렵고 힘든 이웃에게 무관심하진 않았는지...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셨는데 과연 나의 삶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자신에 대한 끝없는 물음 안에서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사랑이신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믿음이 약함을 꾸짖으십니다.

 또한 우리는 오늘 복음 말씀처럼 너무나 많은 걱정거리들을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입을 것들과 자녀, 건강, 출세 등등... 개인의 욕망을 위한 걱정들에 둘러싸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진정한 행복과 여유의 삶을 저버리고 끝없는 소유욕과 경쟁의 늪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진정한 삶의 변화는 올바른 삶의 우선순위를 가졌을 때 가능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따르고자 하는 삶의 변화를 위해 세상살이에 대한 많은 걱정 이전에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삶을 올바른 눈으로 발견할 수 있는 지혜를 청해야겠습니다.

 마음에 와 닿는 좋은 글이 있어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잔치에 초대받게 됩니다. 그런데 초대받았다고 해서 다 가지는 못합니다. 초대에 응하는 자세를 대체로 다음과 같은 등급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5등급: 초대장을 보고는 애당초 가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4등급: 가지는 않고 전화로 축하를 전합니다.
3등급: 다른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축의금만 보냅니다.
2등급: 잔치에 가서 음식도 먹고 축의금도 건넵니다.
1등급: 마치 ‘나의 잔치’인 듯 여깁니다.

그래서 음식 준비와 더불어 설거지까지 도와줍니다. 또한 잔치 내내 같이하면서 손님들과 함께 어울립니다. 이러한 등급의 차이는 아마도 잔치 주인과 초대받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잔치를 마련하시고 초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어떠한 등급으로 그 초대에 응하고 있습니까? 아예 눈길조차 돌리지 않는 5등급입니까? 핑계를 생각하면서 가지 않는 4등급입니까? 가고 싶기는 하나 더 중요한 일이 있다며 헌금이나 교무금만 내고 잔치에는 참여하지 않는 3등급입니까? 적어도 그 잔치에 함께하는 2등급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주님의 잔치를 ‘나의 잔치’라 여기며, 잔치의 손님으로만 머물지 않고 잔치의 봉사자가 되는 1등급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주님의 잔치는 우리를 위한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5등급으로 대하면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1등급으로 대하실 것을 기대하는 것은 염치없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1등급으로 대하여 그분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되고, 그분의 슬픔이 우리의 슬픔이 될 때, 그분께서도 우리의 기쁨에 함께 기뻐해 주시고, 우리의 슬픔에 함께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지금 나는 하느님의 초대에 몇 등급으로 응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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