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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신부의 고백 ” 18.02.1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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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신부의 고백 ”



나는 신부입니다. 나이도 들고 신부생활도 길게 했고 이제는 은퇴도 했습니다. 이제는 남이 나를 “신부님”하고 부르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처음 신품을 받았을 때 이 호칭은 대단히 거북스러웠습니다. '신부님'이 그저 교회 안에 있는 호칭이려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뜻을 생각하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에 나이 많은 신도가 자기보다 어린 신부에게 "당신은 나의 영적 아버지입니다." 하고 말하고, 아버지뻘 되는 사람이 “신부님은 우리들의 영적인 아버지입니다.” 라고 말하는 세상에 산다는 느낌이 들어 도대체 내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싶어 여간 거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회는 왜 하필이면 세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상식 밖의 호칭을 골라 그들의 사제들에게 붙여 주었을까? 가부장적 권위를 풍기는 이런 배려(?)의 '영성'은 무엇인가? 그런 영성에 의존하여 사는 교회는 정말 영적인가? 언제부터 사제가 신부로(Father)로 불렸을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느님이시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도 자신을 아버지(Father)라고 불러라 하지 않으셨는데...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나는 신부라는 호칭이 단순히 가부장적 산물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부라는 호칭은 사제는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는 신원을 일깨워 주는 호칭이라는 것을... 사제는 작은아들의 아버지처럼 관대하고 자비롭고 용서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사제는 큰아들의 아버지처럼 돌아온 아우를 반기고 기뻐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사제가 신부로 불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제는 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로워야 합니다. 사제는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모두에게 햇빛을 주시는 하느님처럼 선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손을 뻗어 축복할 수 있어야 하며, 상처를 준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작은아들과 큰아들을 모두 안아주는 손을 가져야 합니다. 신부로 살기 위해 사제는 아들이 되어야 하고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늙어야 합니다.  


윗글은 제가 자주 읽은 저의 은사 신부님의 자서전적 에세이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무슨 일이(?)이 있으면 보속으로 읽고 반성을 하곤 합니다. 복사를 하면서 나는 신부가 되어야하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왜 신부가 되었냐?”라는 질문을 하면 아직도 그럴싸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사이 새 신부들은 이런 질문에 대답도 참 잘하던데 “그냥 살다 보니 신부가 되었습니다.”라고 속으로 중얼거릴 뿐입니다. 사실 솔직한 답변이고 지금의 내 모습이기도 합니다. 사제의 길을 내가 선택한 것 같지만, 사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게 주어진 삶이고 나에게 주어진 사제의 길을 은총으로 받아드리고 있습니다. 신부로 살아가고 매일 미사를 통해 강론을 하고 있지만 나는 신앙 체험도, 신 체험도 아주 진하게 해 본 적도 없습니다. 다만 훗날 이웃의 체험이 하느님에 대한 체험이라는 예수님의 말씀(마태 25, 31이하)을 듣고 위안을 얻을 뿐입니다. 하지만 지난날의 삶을 되돌아보면 하느님의 도우심 없이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그 일을 신 체험이라는 말로밖에는 달리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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